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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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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워싱토니안
댓글 0건 조회 3,175회 작성일 13-08-03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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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으로 되돌아간 한국의 중우정치(衆愚政治)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데카르트가 했던 명제는 오늘 다시 생각해봐도 여전히 아리송하다. 해석하는 사람들마다 입장과 기준이 달라서 증명과 모순이 오늘날까지 혼재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는 수학을 공부하면서 객관적이며 과학적이고 진리로 알고 있는 경우도 답이 틀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나서, 그렇다면 복잡다기한 인간세계에는 얼마나 많은 부조리와 불완전이 많겠는가, 하는 것에 의심과 회의(懷疑)를 가지게 된다. 회의론자의 반대개념인 독단론자(獨斷論者)들이 진리의 절대성만을 따르고, 일체의 이론에 대해서 토론자체를 무시해버린 것에 비하면 당시의 시대상황에 비추어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그를 근대의 합리주의(合理主義)철학의 창시자로 일컫고 있다.
어떤 명제를 놓고 토론을 할 때는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다.’는 전제가 있어야 건강한 토론이 가능하다. 그게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오늘 한국의 정국은 이런 합리가 아예 없어져 버렸다.
한국의 정치는 다수의 우중(愚衆)을 움직이는 소수의 책략가에 의해 이끌리는 전형적인 중우정치의 행태를 띠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한국에서 대선이 끝난 지가 8개월이 넘었고, 박근혜대통령이 취임한 것도 6개월이 지나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절차적 하자가 없어보이던 한국대선이 국정원의 대선개입이라는 국가기강문란 사건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가 커지고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화려한 수사가 뭔가를 감추기 위한 음습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현실이다.
단한 명, 단한 표를 이겼어도 승부는 내야 하는 것이 선거제도이다 보니 과정에 대해서는  무시해 버리기 쉬운 속성이 있다. 그러나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 담보되지 않는 선거는 불신분열의 악순환과 이런 심리나 현상들을 역이용하는 소수들에 의해 다수의 우중들이 착취당하고 민주주의가 변질되고 역사가 철저하게 뒤틀리게 된다.
그런 과정의 재발방지를 위해서 국회에서까지 논의되고 있는 국정원 국정조사를 마음대로 농락해버리고, 그런 제 과정에 대한 논의 자체를 부정, 회피함으로써 개인의 이익을 보전하려는 것들로 온통 뒤덮여 있다.
언론은 눈감고, 극히 소수의 정치꾼들에 의해 거짓말과 혼돈의 사회가 난무하지만 우중은 무엇이 진실인지를 모른다.
다시 대선을 치른다 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시대를 절망하게 만든다.

회의론자(懷疑論者)의 입장으로 되돌아가 보자. 뭔가 정상적인 것도 그것을 다른 각도에서 관찰해보고 의심을 가져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 역사관과 철학을 지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알면서도 그 길을 간다.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게 역사와 후손들 , 나아가 인류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신념 때문이다. 하물며 수사가 진행되고 독단론자들이 무시해 버린 것들이 엄연한 현실이었고 사실이었는데도 그렇게 ‘끝났으니 끝이다’라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우려하는 것은 생각할 줄 몰라서 맹신자들를 양산하지는 않는다.  살아있는 권력에 철저하게 굴복, 굴종함으로써 역사와 전체를 배신하고 오직 자신하나만을 보전하고자 비겁하고 비굴함을 넘어서 염치도 체면도 없이 맹신자를 만들어 내는 데 앞장서는 소수들을 가려내고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일이다.
적어도 한국은 일본 강점기 이전까지는 비록 서양문화가 들어오기 전이었지만 이런 부류가 사회와 역사로부터 배척당하고 심판받는 시스템이 있었다. ‘선비정신‘이 살아 있었다. 간신들도 철저하게 가려냈다. 그게 없어져버린 것이다. 나쁜 것들을 청산하지 못해서 지금은 그 썩은 정신이 기세가 더욱 등등하다.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낯간지러운 아부나 하는 언론이나 개인이 넘쳐 난다.
이명박 정권에서 4대강을 그렇게 찬양하던 그 언론, 그 사람들이 국정원사태에 대해서도 독단론자들과 함께 우매한 대중을 질곡속으로 이끌고 있다.

그 질곡을 밝히는 촛불이 싫은 것이다. 밝음을 싫어하는 그들을 구분할 줄 아는 ‘깨어있는 시민’들만이 현대판 중우정치를 심판할 것이다.
자, 역사와 진리를 밝힐 촛불을 다시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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