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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구 우산중 교감 광일 칼럼~ 뜨거운 여사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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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
댓글 0건 조회 3,196회 작성일 17-08-23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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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서-김진구 우산중 교감] 뜨거운 여사님들


광주일보 2017년 08월 08일(화) 00:00


먹는 것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일이다. 대규모 집단이 생활하는 단체 급식은 더욱 그렇다. 학교에서도 급식실 관리나 조리는 주요 업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초·중학교는 점심 한 끼지만,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는 세 끼 모두를 제공한다.

인류 역사의 큰 전쟁에서 군량미 조달과 운반이 승패를 많이 좌우했다. 수나라 백만 대군이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수적으로 대적할 수 없어 청야입보(淸野入保) 전략을 썼다고 한다. 들판을 깨끗이 비우고(淸野) 백성들을 성 안으로 철수시켜(入保) 수성전을 벌이면서 수나라 군사를 고갈시킨 것이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은 백만 명이라는 병사 수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지만 이중 3분의 1이 보급이나 밥을 담당한 병사라고 한다. 칭기즈칸이 소수의 병력으로 그 넓은 대륙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쇠고기를 육포로 만들어 오랜 기간 식량으로 쓸 수 있는 군량미 개선에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보급과 식사를 제공하는 일은 동서나 고금을 떠나 중요한 일이다.

조리실에 연결된 우뚝한 알루미늄 환기통이 조용하다. 방학이어서 뿜어내던 열기를 멈추고 폭염 아래 2학기 개학을 기다리고 있다. 학교에서 가장 뜨거운 공간 중에 한 곳이 급식실이다. 조리실은 열기로, 급식실은 학생들의 관심으로, 요리를 하는 여사님들은 분주한 손놀림으로 달아오른다.

조리실은 수증기, 습기, 열기로 가득하다. 냉방시설이 있고, 대형 선풍기가 돌지만 감당이 되지 않는다. 한정된 공간에 여기저기 푸른 가스불꽃이다. 수백 개의 전(煎)이 설설 끓는 기름 속에서 튄다. 여기에다 정해진 급식시간에 맞춰야하는 강박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조리실은 숨 막히는 가마솥이다. 지난 중복(中伏) 때 어느 기업 현장 조리실에서 복달임 음식 삼계탕 700인분을 끓이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십 수 명이 어지럼증으로 쓰러진 일이 발생했다. 학교 조리실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름철이면 반복되는 일이다.

4교시가 끝나고 학생들이 급식실 가는 소리만 듣고도 오늘의 급식 메뉴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동그랑땡, 돈가스, 치즈떡볶이 등 입맛에 맞는 식단이면 환호성과 함께 우당탕 뛰는 소리가 복도에 가득하고, 나물류, 고튀(고등어 튀김), 조튀(조기 튀김) 등이 나오면 발걸음이 무겁고 조용하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관심이 크고 즉각 반응을 한다.

한때 급식 담당하는 분들에게 급식 만족도를 너무 높이려 애쓰지 말라고 역설적인 부탁을 하기도 했다. 급식 만족도 조사는 위생상태, 친절도, 식단 등 여러 측면에서 평가하기에 높은 평가를 받을수록 좋지만 학생들이 선호하는 식단 여부에 따라 만족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식습관도 교육이라고 본다면 의도적인 식단 편성도 필요하다. 선호도가 떨어지더라도 더 건강하고 다양한 음식 섭취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조리실은 책임자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출입하기 위해서는 보건증이 있어야한다. 한번은 구청 보건소에서 보건증을 발급받아 하루를 작정하고 조리실 체험을 했다. 오전 7시40분 식자재 검수부터 시작했는데 주로 재료 운반과 과일 깎기, 배식, 식기 애벌닦기를 했다. 그날은 비빔밥이 나오는 날이어서 식판과 함께 큰 식기 수백 개도 애벌닦기를 했다. 빠른 손놀림에도 거대한 물통에 잠겨있는 식판 식기는 끝이 없었다. 배 껍질을 깎고 사등분으로 나누는 작업에 모든 여사님들이 함께했다. 귤은 하나씩 주기만 하면 된다. 허투루 보았던 많은 것들이 하루 체험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그릇 하나 더 낸다거나 어느 과일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여사님들의 업무량을 생각하면 식판 앞의 투정이 사치처럼 여겨졌다.

엄마가 차려 준 밥상 앞에서 몇 안 되는 가족들도 ‘짜다, 싱겁다, 맵다, 질다, 되다’는 소리가 나온다. 몇 백의 다른 입맛을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간혹 배식 봉사 장면을 보게 되는데 음식을 나눠주는 봉사도 훌륭하지만 조리실 체험 봉사는 더 큰 깨우침을 얻게 될 것이다. 밥맛이 없는 분들은 더욱 그렇다.

지난달 어느 의원이 학교 급식실에 근무하는 분들을 “그 아줌마들이 뭔데, 그냥 동네 아줌마거든요.”라고 했다. 그냥 이 분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이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부가가치나 생산성이 높아지는 직종이 아니라면서 이렇게 낮잡아 깔 수 있는가. 뜨거운 가스불보다 더 뜨거운 마음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우리 모두가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니 급식실 여사님들 힘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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