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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워싱토니아
댓글 0건 조회 3,663회 작성일 11-02-26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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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 웹에 문제가 있어서 관리자님들께서 몹씨 당황했었나 봅니다.
온 국토가 엉망이 되는 기가 막히는 현실에서 느닷없는 생각이 나서 부끄럽지만  수필 한편 써 봤습니다.


열쇠꾸러미



초봄에 논보릿닢이 소곳소곳 풀냄새 풍기며 올라오고, 그보다 더많은 독새풀이 논고랑을 넘어 논두렁을 휘감고, 키작은 자운영이 다소곳하고도 수줍은듯이 납작하게 꽃볼을 내밀 때가 되면 지천은 연록의 바다를 이룬다.
못자리를 위해 비워 놓은 논에는 벙벙하게 물이 괴어있고, 그안에 흐물거리던 개구리 알에서 이제 막 깨어난 올챙이들이 그 작은 꼬리로 스무배도 넘을 몸통을 떠 받치고 잘도 헤엄을 친다. 눈을 들어 허리를 펴면 거짖말 같이 사방이 아지랭이요.
문득 종달이 소리가 드높다.
삐비가 여물이 들면 주머니에 한주먹 소금을 넣고 집을 나선다.
쇠똥이 많은 곳에 통통한 삐비가 유난히 많다. 뽀드득 소리나게 삐비를 뽑아 발겨서 새하얀 여린 삐비살을 입갓이 검붉어 질 때까지 집어 넣지만 항상 허심허심하다.
다 자란 논보리밭이 누룩누룩해져 가면 그사이를 비집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개구리사냥이 시작되고 잡힌 개구리를 힘껏 땅바닥에 내쳐서 두다리 쭉뻗어버린 모습에 죄책감도 없다. 성악설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물며 개구리의 상체를 한쪽발로 밟고 다리만 그대로 뽑아서 껍질을 볏겨내고, 아킬레스 건을 뚫어 가져온 철사줄에 꿰뚫어 매는데 순식간이다.
한마리 두마리 우리 동네 명포수가 장끼 잡아서 허릿춤에 메어달듯이 치렁치렁, 어깨는 으쓱, 같은 또래였지만 덩치가 더 큰 옆집의 이성재는 항상 나보다 곱절이나 많다.
어디서 구했는지 꼬깃꼬깃 성냥종이와 성냥촉 세알, 어찌해서 겨우 불을 붙이고 나서 한쪽에선 조막손들로 바람 막고 한 쪽에서 입파람 불고 마른 풀 이래야 연기가 안난다지만 어른들이 몰랐을까,
지천에 보리인데 산불로 번지지 않을 논가운데이니 봐주었겠지,
겨우 열살짜리들 고만고만, 한사코 작은 키를 더 수그리라고 하면서 덜익은 보리꽁뎅이 불에 꼬실라 두손으로 비벼서 훌훌 불면 껌뎅이인지 보리인지 모를 말랑한 몇알 정신없이 입속에 털어 넣다보니 손바닥 닿는 곳곳마다 온통 숯검뎅이라.
서로 쳐다보면서 허연 토끼이빨 보여가면서 킥킥거린다.
문득 잡은 개구리다리 세개씩 구워먹잔다.
제일 작은 걸로 세개씩을 불속에 집어던지고 나서 부지깽이로 뒤적이다가 오그라들고 비틀어진 개구리다리 하나씩 입에무니 쫄깃쫄깃, 까마득이 잊고 있던 닭고기가 이런 맛이던가,
왕소금 덩어리 하나물고 입맛다시는 가운데 문둥이 살찐다는 봄날은 그렇게 가고 있었다. 

2002년 12월 4일 씨애틀의 씨택공항에 내렸다.
한시간이 지나고 두시간이 지나도 나온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니 왔다가 갔는지도 모르지, 겨울인데다 부슬비까지 내린다.
1.4후퇴당시 바람찬 흥남부두가 이랬었을까,
동구맣게 나만 쳐다보는 식구들 앞에서 손짓 발짓 다해가며 어렵게 공중전화를 돌리니, 한국사람 목소리다. 이제 되었구나.
30분쯤지나서 나타난 사람, 들리는 말로는 비즈니스가 4개인 성공한(?) 재미동포 사업가,
짐을 옮겨 싣고나서 식구들이 모두 타고난뒤에 그 박사장이 차에 시동을 걸기위해 열쇠를 미니밴 키박스에 끼우는 순간 그 열쇠뭉치에 달려있는 열쇠 숫자가 어림잡아 스무개는 족히 넘어 보였다. 우습기도 했지만 초면에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요즈음 한국엔 아파트도 열쇠가 없어졌다고 하는데, 아파트 열쇠와 차열쇠 달랑 두개갖고 살아오다가 모든 게 다르다고는 하지만 별일도 다 있구나,
하기야 일찍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업에 뛰어든 몇몇 친구들에게서 비슷한 걸 보기는 했지만 저렇게 가을 철 메뚜기 아가미 꿰듯, 아니면  봄날 개구리 뒷다리 꿰어 걸 듯 열쇠꾸러미를 지니고 살다니!

9년이 지나면서 늘어난 열쇠숫자가 열개가 넘는다. 언제든지 아무차나 운전해야하니 4개요. 흩어져 있는 가게열쇠 3개에다, 각각 가게안의 오피스 열쇠, 금고열쇠, 창고열쇠…, 9년전의 기억이 새롭다.
‘의인막용(疑人莫用)하고 용인막의(用人莫疑)니라.’ 명심보감 성심편(省心篇)에 나와 있는 말씀이다. 말인즉, ‘사람을 의심하려거든 쓰지를 말고, 사람을 썼으면 의심을 말라.’

이제 다시 열쇠를 두개로 줄였다. 폼나게 한국에서처럼 멋진 재킷차림은 아니지만 주머니가 한결 가볍다. 종업원을 존중하고 믿으니 그들의 얼굴이 해맑다.
나의 딸, 아들 같은 또래의 피부색 다른 또다른 아들 딸들이다.  올 여름, 스물 한살 미노의 아내가 6개월 된 딸을 데리고 과테말라에서  오게 되면 아홉가족이 뒷뜰에서 파티라도 할 요량이다.

2011.  2. 25   

워싱턴

    강  창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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