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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유보금과 탐욕의 끝 (1)-추억의 광주고속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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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워싱토니안
댓글 0건 조회 3,534회 작성일 15-03-05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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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유보금과 탐욕의 끝 (1)


얼마 전에 한국의 자영업자 10년 내 잔존확률이 2%라는 글을 읽었다.
이것은 나하고 상관이 없는 문제가 아니고 매우 중요하다. 아다시피 미시경제와 거시경제가 별반 구분마저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에서
갈수록 세상살이가 힘들어지고 희망이나 행복지수라는 게 별 무의미해지고 오로지 생존지수, 즉 사느냐, 만약 살아남게 된다면 몇 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 하는 연구가 진행 될지도 모르는 세상에 서 있다.
호남 사람들이 지금의 아시아나, 그러니까 광주고속버스를 타고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대전을 지나 반포에 자리한 강남 터미널에 도착하면 지어도 어떻게 그렇게 지었을까 싶게 컨테이너 조각을 덕지덕지 붙여서 만든 단층짜리 호남영동선 터미널속으로 들어간다. 바로 옆에 피라밋처럼 높이 솟은 경부선 터미널은 ‘율산’이라는 광주서중 출신 신선호라는 사람이 지었다.

이 신선호와 그의 몇몇 친구들은 자본금 100만원으로 불과 3년만에 자본금 100억이 넘는 14개회사를 거느리는 그룹을 이룬다 약관의 20대 후반의 나이였다. 그러나  박정희 말년에 석연찮는 이유로 개박살이 나버린다.
왜 버스터미널마저 이렇게 다를까 생각해 본들 생각하는 사람만 비참해지니 같은 일행끼리도 눈만 껌벅거려야 했다. 희멀건 보릿죽이라도 감지덕지하는 마음으로  뼛속까지 호남을 지워야 하다못해 대기업체 면접이라도 통과해서 입사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터미널을 새로 지을라나 서울에 올 때마다 기대해(?)보지만 영원히 짓지 못하고 20년간 그대로 쓰다가 결국 자가용이 늘어나고 육상대중교통이 줄어드니까 기존 경부선터미널과 통합해버리면서 그 흉물같은 호남영동고속터미널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악착같이 기업 같지도 않는 그 고속버스를 자기 것이나 되는 것 인양 타고 다녔다. 하기야 다른 버스라는 것이 있지도 않아서 할 수없이 타고 다녔다는 말도 틀리지 않다.
어쨌거나 기업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과자 파는 해태제과, 조미료 파는 미원, 그리고 광주고속정도였으니 회사라고 하기 보다는 고만고만 사돈네 팔촌끼리 그냥 꾸려가는 그렇고 그런 회사가 망하지도 않고 근근이 생명을 부지하고 있었다. 야구선수라고 모아서 가진 것이라고는 몸으로 뛰는 것이라서 구색맞춰 만들어 놓은 ‘해태타이거즈‘는 경기은 잘했지만 선수들 연봉을 볼라치면 6개 구단의 최하위와도 한참이나 밑이다. 그런 것이 다 무슨 겉치레냐 ’오늘 이겼으니 됐다.’면서 소주 한잔 털어 놓고 게임에 이기는 날이면 충장로 소줏집에서 목울대를 울리면서 행복한 한때를 같이했다.
그런 회사가 뛰어봐야 벼룩인 줄 알았다.
 광주전남지역에서 고 박인천 광주고속 사장은 토속부자는 아니었고 해방과 더불어 헌 군대트럭을 버스로 개조해서 여객사업을 해서 돈을 모은다.
그렇게 차근차근 버스비 한 두푼을 모아서 성공을 했고 사업운 보다는 정직하고 근면하게 돈을 모았다. 필요해서 삼양타이어공장(현 금호타이어)도 만들고, - 엊그제 곡성공장에서 노동자 김재기씨가 자살한 그 회사다.- 한국의 부자들이 그랬듯이 이미지 쇄신을 하기 위함이었던지 중앙여고와 금호고등학교도 세운다. 그 금호고등학교 체육선생이던 기영옥은 나와 고등학교,대학교 동기동창이다. 그의 아들이 축구국가대표 기성용이며 탤런트 한혜진의 남편이다. 박인천은 성격도 온화했고 동네 인심도 후했으며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고,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동네에서 욕을 덜먹은 부자였다.
나중에 그 잘 지었다는 자식들이 싸움질 하면서 현재 개 박살이 나 있지만 말이다.
첫째 고 박성용 금호그룹 2대회장이다. 이 사람이 서울대, 예일대 대학원을 나왔다. 경제부처에 근무하면서 중앙정부와 인연을 맺었고, 88년 민항, 아시아나를 군사정권으로부터 하사받았다. 그것도 광주사람들은 그저 잘된 일이라고 박수쳐 줬다. 지방에 부자하나 있으면 무슨 덕보는 줄 알고 말이다. 3대 박정구는 광주고, 연세대를 나왔고 형으로부터 형제간에 그룹을 물려주는 모습이 한국기업에서는 아주 독특하고도 보기 좋은 모습으로 비춰졌다.
그의 여동생 박현주는 미원의 임창욱에게 시집가서 삼성 이재용과 이혼한 임세령을 낳는다. 임세령은 당시 권문세도가에서 서로 며느리를 삼으러고 쟁탈전이 심했었던 미모와 재능을 가져서 화제를 모았었는데 결국 삼성가로 팔려갔다. 그 다음은 여러분도 아는 내용이다.
불과 30여년전 그 임세령의 할아버지 임대홍은 미풍의 제일제당과 사활을 건 싸움을 한다. 그 때 임대홍이 미원을 지켜냈던 한마디 '미풍의 제일제당은 이병철의 일부이지만 미원은 임대홍의 전부다' 가격경쟁과 물량포화로 미원을 죽이려했던 제일제당에 거꾸로 가격을 2배로 올려버렸는데도 소비자들이 미원만을 선호해 버렸던 기억과  일화는 유명한 '기업전쟁사'로 남는다. 이런 할아버지들의 악연도 돈 앞에 어쩔수가 없었나 보다. 물론 '역린'의 운명을 비켜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왜 이렇게 금호에 대해서 장황해야 했는가,
그게 사내 유보금과 개인의 생존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지를 경제 전문가도 아니고 깊이도 별로이지만 사회학적 관심에서 출발하여 시리즈로 엮어가고자 한다. 한꼭지에 싣기에는 좀 할말이 있을 것 같은데 서너꼭지가 될지 20꼭지가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연재해 가는 과정에서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내용이나 수정을 요하는 부분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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