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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구 단우 광주일보 기고문- (교단에서) 털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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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
댓글 0건 조회 2,421회 작성일 17-02-0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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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2017년 01월 17일(화) 00:00 게재문

                                                  교단에서 -  털고무신

                                                                                                                우산중학교 교감 김진구


지난 연말 교장선생님이 교직원들에게 털고무신을 선물했다. 말바우 시장에서 구입한 7000원짜리 말표 검정 털고무신이다. 실내화로 털고무신을 신어보겠다고 의향을 밝힌 모두에게 한 켤레씩 돌렸다.

나는 수 년 전부터 학교에서 여름에는 흰고무신, 겨울에는 검정 털고무신을 신었다. 작년 초봄까지 신다가 신발장 아래칸에 넣어 두었더니 누구도 손대지 않고 제자리에 있다. 두 짝을 마주쳐 먼지만 탈탈 털고 신어보니 그 감촉 그대로다. 고무의 신축으로 전체 발등을 감싸주며 발가락을 약간 조이는 느낌은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이란 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다. 활동적이고 보온도 좋다. 실내외 어디서건 신을 수 있는 편한 신발이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눈발이 날릴수록 노루털같은 누릿한 털은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산사 댓돌 위에 놓인 털고무신. 찬바람은 추녀를 지나가고 풍경소리는 이 신발 속에 고이는 듯하다. 윤이 날 정도로 희디흰 고무신들이 코끝을 맞춰 정갈하게 놓인 것은 수양의 시작이요, 끝이라 할 수 있는 조고각하(照顧脚下)의 결실이 아닌가. 겨울 마을회관에 놓인 할머니들의 털고무신도 서로 온기를 나누는 듯 포근하고 정겹다.

추운 날 떨면서 등교한 학생이 교실로 들어가기 위해 현관입구에서 신발을 벗는다. 실내화를 교실 신발장에 두고 다니니 현관에서 교실까지는 양말을 신은 채로 들어간다. 여간 불편한 모습이 아니다. 모든 학생이 그렇지는 않지만 실내화를 놓고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 하교 때에도 교실에서부터 신발을 들고 맨발이나 양말로 내려와 출입구 근처에서 신발을 신는다.

여름철 비 오는 날이면 더욱 난감해진다. 규칙이 몸에 밴 학생은 젖은 채 올라가고, 대부분의 학생은 그냥 대충 신 신고 올라간다. 이런 모습으로 학생과 교사가 마주치면 서로 난처하다. 실내화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고 학생들을 마냥 나무랄 수만은 없다. 선생님 중에도 출근할 때 신은 신발 그대로 근무하고 퇴근하는 분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교장선생님이 교직원들과 실내외에서 편안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 이야기를 하다가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털고무신이다. 한 켤레씩 선물하고 본인 스스로 털고무신을 신고 출장도 다녀서 모두들 한바탕 웃고 따뜻한 방학을 맞이했다.

교실이나 복도 바닥의 재질이 학교마다 다르고 또 각 학교의 사정이 있겠지만 실내화는 이제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등하교뿐만 아니라 운동장 체육시간을 제외하면 학생들이 흙 밟을 일이 없다. 실내화를 신고 운동장에 들어갔다고 소리 듣고, 비 오는 날과 살얼음 추운 날 눈치 보며 등하교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질 것 아닌가. 운동장 수업이 끝나고 교실로 갈 때 잘 털고 들어간다는 약속만 지켜진다면 말이다.

오바마가 굿바이 연설을 했다. 그의 지지는 변함이 없었고 마무리는 아름다워 보였다. 1960년대, 그러니까 겨우 반세기 전에야 완전한 투표권을 가질 수 있었던 흑인이 하얀 집의 주인이 된 것 자체가 새 역사이다. 백인들의 정치사회에서 두 번이나 대통령이 된 그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얼마 전 백악관이 공개한 몇 장의 사진은 우리 상식으로는 가관(?)이었다. 어느 위치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위한 몇 번의 파격 연출은 누구나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국정연설 초안을 논의하는 오바마와 그 참모들의 사진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약자를 배려하면서 국민의 마음속으로 다가간 오바마의 명연설은 이런 과정에서 작성된 것이었다.

오바마는 구두 신은 왼발을 탁자에 딛고 서서 두 손을 내저으며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모습이고, 맞은 편 두 참모는 가장 거만하게 편한 자세로 소파에 등을 기대고 구두 신은 두 발을 꼰 채 대통령 앞 탁자 위에 턱하니 올려놓았다. 이 정도의 사진은 연출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반복된 습관의 축적이 아니면 어렵다.

문화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자리는 격식이 문제가 아니라 국민에게 전할 메시지를 잘 준비하는 것이 본질이라는 공통 인식이 있기에 가능한 장면이다. 사진 못 본 분들 ‘국정연설 초안을 참모들과 논의하는 모습’을 검색해 보기를 권한다.

구두든 실내화든 교복이든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나 규칙은 폐지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 교육현장도 따뜻한 마음으로 차가운 결정을 내릴 사안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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