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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살았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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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워싱토니아
댓글 0건 조회 3,142회 작성일 12-08-16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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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살았던 일생
                                     

‘돌아서면 남이고, 원수가 따로 없다.‘
부부사이가 아무리 칼로 물배기라고 하지만 정말로 갈라서면 이런 것인가,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요샛말로 아주‘쿨’하게 해어지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자식들도 자라서 나가고 부부 단둘이 덜렁 남아서 인생의 후반기 2~30년을 더 지내려고 한다면 곁에 누가 있고 없고는 많이 다를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부부만한 게 없다.’ 라는 말이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사람가운데서 ‘가슴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과 ‘머리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나름대로 구분해 보는 고약한 버릇이 생겼다. 비즈니스는 머리로 해야지 가슴으로만 해서는 거의 성공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가슴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다. 요즈음에는 부부 간에도 가슴이 없이 머리로만 살아가듯 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어렸을 적에 스토우부인이 썼다는 ‘엉클 톰스 캐빈’을 읽어보지 못한 분이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 실제 주인공이 살았다던 ‘오두막집’이 이전에 필자가 살던 집에서 1마일도 안되는 곳, 매릴랜드 베데스다에 현존하고 있다. 짐승처럼 착취당하고 강제로 이리저리 팔려가서 가족 간에 생이별을 하고 특히 어린아이와 생이별을 하는 흑인 엄마들의 울부짖음을 보고 그 아이를 다시 돈을 주고 사서 엄마 품에 되돌려 주는 일을 하던 일곱 자녀를 둔 작가는 노예해방이 선언되고 난 뒤 백악관에 초대되었을 때 링컨대통령이 ‘이 작은 손으로 쓴 이야기가 미국의 역사를 바꾸었네요.’라는 격려를 받았다.
이렇듯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못하던 일’을 스토우부인은 바로 ‘그 일’을 해냄으로써 인류의 역사를 바꿔놨던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출판사그룹 아셰트 클래식은 ‘가슴으로 읽는 책’부문에 2번째 작품으로 이 책을 소개하고 있다.

영국이나 일본등 섬나라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에서 외국에 나가려면 항공기나 배를 타야만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오로지 한국밖에 없다.
한민족은 누구나 ‘통일’을 입에 달고 산다. 그것은 북한정권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통일에 대해서 북한주민들이 자지러지는 모습을 여러 번 화면에서 보았다. 그런데도 실제로 권력자들이 통일할 생각이 있겠느냐, 생각해 보면 ‘아니다.‘가 나의 견해다. 북한 주민이나 남한국민들이 아무리 입으로 외쳐 본들 실질적 접근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그리고 현재 북한정권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내 놓을 수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제아무리 떠든대도 아무런 뒤탈이 있을 리가 없는 게 통일이다. 머리로만 계산해서는 통일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책임의 일부는 남쪽에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누군지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선거 때만 되면 이들은 남북한 간에 짝자꿍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춘다. 통일을 이용해서 권력을 유지 연장하려는 자들이 그들이다. 그래서 말로 머리로만 통일을 외치는 사람들을 다시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고 김대중대통령은 남남북녀라 했듯이 남북을 부부사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노예부부가 자기들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생이별을 해야 했던 것처럼 남북이 그렇게 갈라져서 그렇게들 애절하게 외쳐대면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던 남북관계를 남쪽에 있던 남편이 북녘의 부인을 살피듯 생명의 위험도 마다 않고 건널 수 있는 강단을 어느 누가 감히 흉내라도 낼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6.15 남북 공동선언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민족의 일대 쾌거였다.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 요즈음에 이런 말 했다가는  홍두께로 보리타작하던 때나 듣던 소리 한다고 할 것이다. 우선 산사람 먹고 살기도 바쁘고, 죽고 나서 뭐가 되든 상관 않겠다는 듯 정신이 하나 없는 세상이니 더욱 그렇다.
가슴으로 통일을 실천했던 분이 가신지도 3년이 지났다.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가슴으로 살았던 도산 안창호선생이 독립이 되고 나서도 민족사에 기려지는 것과 같이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가슴에 남아 있을 사람으로 필자는 그 분을 그 첫 번째로 꼽는 데 주저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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