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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란숙(무등기러기) 기고문~기억은 만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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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
댓글 0건 조회 3,047회 작성일 17-09-1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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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란숙 (무등기러기, 전남여고73기, 화가이며 수필가)

 <무등기러기의 9월 16일  북한산 둘레길 모임을 다녀와서...>
                                                                                                                  2017년 9월 17일

기억은 만남에서 시작되고 사랑으로 간다.
사랑은 기억과 만나 영원성을 얻게 되고, 그 기억은 1년이 지나고 10년 20 년, 40 년 세월이 흘렀어도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가도 기억과 함께하는 사랑은 나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내생애에 1972년 고1때 만난 흥사단 광주학생아카데미는 나에게 영원성으로 가는 시작이고 만남이었다.

초등6학년 때 부터 비실거리며 걷기 어려워했던 무릎은 중 1때 편도선열로 인한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판명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나의 아픔은 중1때 부터 시작 되어 합병증으로 여기저기 삐걱거리며 제대로 학교생활을 못하게 하고, 한참 예민한 사춘기를 홀로 병원에서, 집에서 읽은 책과 라디오에서 나오는 클래식 음악으로 달래다 턱걸이하듯 들어간 고등학교 때 언니 덕분에 만나게 된 흥사단 아카데미는 나에겐 신선한 돌파구였다.
선배들과 이야기를 통하여 음악을 얘기할 수 있었고, 내가 뜻도 모르고 읽었던 책의 내용을 논하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내 상상속의 현실을 논할 수 있었던 흥사단 광주학생아카데미!

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올라와 대학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해 올라와 살던 많은 기러기들이 서로 뭉치고 이끌어주자고 만들었던 무등기러기 모임이 끊어지지않고 명맥을 이어와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 무등기러기 모임이 어제 16일 북한산 둘레길 8~10구간을 쉬며 걸으며 얘기를 하며 걷기를 하자고 구파발역 2번출구 앞에서 모였다. 주변 문화유적인 금성당, 화의군묘역, 진관사를 둘러보고 걷기를 마치고 늦은 점심을 북한산 갈비 집에서 먹고 윤회악수를 하는 것으로 끝나는 모임이었다.

병원에 들렀다 가는 바람에 15분쯤 늦었는데, 2번 출구앞에는 얼마나 모일까? 하는 노파심에도 불구하고 많은 선.후배님들이 오시어 기다려주셔서 함께 출발했다.
1년후배인 차 민식이 흥사단기를 앞세우고 걷는 모습을 보노라니 저 깃발아래 얼마나 동기들과 선. 후배들이 단결을 외치고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웃고 울었던가? 기억을 더듬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기러기가 그려진 흥사단 기를 앞세우고 각 분대별 수련기를 뒤따라 무등산이며, 극락강을 걸어 행군하고, 수련회에 가서 저 깃발을 서로 먼저 잡으려고 조원끼리 동맹하여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은,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단순한 저장과 회상작용이 아니고 기억은 지금 내가 있게하는 또 하나의 출발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여자 회원은 나와 후배와 딱 2명 뿐이었지만, 위로는 67 부터 아래로 74(고2때 활동한 해 를 말함1967~1974), 그리고 대A(대학생 아카데미)를 활동했던 선. 후배들이 깃발을 따라 은평뉴타운을 지나 금암문화공원에 들러 서울지역의 대표적인 마을 당집인 금성당의 유래를 들었다. 아쉽게도 토요일이라 모두 문 이 잠겨있어 그 안을 살펴보지 못한 아쉬움이 컸지만, 이런 곳을 몰랐던 내가 이제라도 알았다는 것으로 위안을 하고 서울에도 찾아봄 많은 유적지와 사적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났다.

세종임금의 아들인 금성대군과, 화의군이 단종복위 운동과 연루되어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해 그 억울함을 모시기 위해 금성대군을 모신 사당이고, 화의군 묘역이 조성되어있는 그곳에 앉아 현역에서 은퇴하시고 은평구 문화해설사로 봉사하고 계신 정 철식회장님의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대해 이야기를 간단히 듣고, 유인물까지 프린트해 온 국어선생님인 정영남 후배의 열정어린 훈민정음에 대해 강의를 듣고, 한옥마을을 지나 진관사로 가는 길을 걸어갔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솜털처럼 널려있고, 바람은 살랑거리고, 숲길의 이름모를 꽃과 풀들은 제각각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궁금했던 후배의 안부를 묻고, 선배들과 쉬며 걸으며 얘기를 하며 걷다보니 시간이 훌쩍지나갔고 점심시간이 지나 나는 아침 일찍 병원에 들르느라 물 도 못 먹고 나와 조금 어지러워 선배에게 먹을 것 좀 달라고 해 양갱을 먹고 물을 마시니 한결 나아 걸을 수 있었다.
평지길이어서 부담이 없었다. 전시때 날마다 나가 무리를 한 탓에 면역이 약한 체력이 탈이나 치료를 하러 토요일이라 일찍 가서 기다리다 치료를 하고 곧장 갔기 때문이다.

식당에 가니 선배님 한 분이 미리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오랫만에 뵌 선배는 내가 고2때 본 모습 그대로 멋지게 나이만 먹으셨다.
회장님의 사회로 여러 선.후배들의 소감섞인 건배사도 있었고, 며칠전 있었던 흥사단 후원의밤 행사 내용과 후원금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 무등기러기의 방향도 얘기를 하면서 익어가는 돼지갈비의 향과 막걸리에 정의돈수의 시간은 깊어갔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조지오웰- .의 말 이 아니어도 나는 고등학생때 아카데미 활동을 하며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바가 있었기에 지금도 그 시절 그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오로지 도산 안창호선생의 나라찾기와 나의 개조에 대한 이념이란 것에 취해 선배들의 말은 하늘 같이 여기며 따랐던 그마음에 지금도 이렇게 나와 얼굴을 보며 기억하고 정담을 나누며 어제 이 모임도 스스로 기억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광주 학생 아카데미 활동을 하고 서울에 와 공부하고 사회활동을 하는 기러기들이(흥사단 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기러기 인'이라 부른다) 많음에도 점점 세파에 찌들리고, 또 이런저런 다른 생각에 나오지 않는 기러기들 때문에 점점 모임이 시들해가고, 새로운 얼굴들이 드문드문 등장하는 이 시점에 나는 기억한다.
아카데미에 입문하려고 입회문답서를 작성하고 밤새워 외우고 단소 의 조그만 구석에서, 옥상에서(회관을, 흥사단 단에 모임장소 소 를 따서 단소라 했다) 1대1로 선배들의 질문에 답하던 그 떨리면서도 아름다웠던 시간을~. 공부하고 봉사하며 밤을 새워 토론했던 그 시간을. 그리고, 기러기 깃발아래 행군하며 불렀던 그 주옥 같은 노래들을‥‥.

그리고, 생각한다. 다시는그 순수 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는 없을것이다~ 하고. 그 순수했던 열정이면 지금 어렵고, 또 다른 일에 우선이지만 한번쯤은 무등기러기에 대한 애착을 가지면 어떨까? 하고~~~. 내 마음에 따라 무등기러기가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는 내 소녀적 기억을 영원히 함께하기 위해 나이를 먹어가도 선.후배들이 모이자하면 나가려 노력할 것이다. 창립 하셨던 고)박 준 선생님의 말씀대로 리더가 못 되더라도 멤버는 될 수 있으니~~.


* 정란순(전남여고 69기) 군과 정란숙(전남여고 73기) 군은 정규만(사레지오고 75기) 군의 누이입니다.
 3형제가 모두 아카데미 출신입니다 - 운영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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