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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돈으로 노벨상을 살 수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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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창구
댓글 2건 조회 3,423회 작성일 10-08-10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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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돈으로 노벨상을 살 수 있는가 ?
  (고 김대중 대통령을 추모하면서)


1998년 6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500마리를 끌고 고향인 강원도 통천으로 휴전선을 넘어 갈 때 TV를 지켜 보던 국민들은  주야장천 돈만 벌 줄 알았던 80넘은 노인네가 '참으로 돈 한번 기막히게 쓸 줄 안다' 고 입들을 모았었고, 그토록 부르짖다가 지친 통일이 드디어 손에 잡히구나  성급한 생각도 했었다.
세계도 깜짝이나 놀랐다. 도무지 타협과 협조, 대화라는 걸 모르던  남과 북이었다. 같은 민족인데도 철천지 원수가 따로 없다. 옆에서 지켜 보던 남들이 안타깝다 못해서 대화를 주선해 볼려고 해도 일정조차 서로 맞추지 못한다.
 소떼방북 이벤트는  이산가족상봉 프로그램 같은 정략적 이벤트와는 그 발상과 실행이
가히 파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전 정부에서였다면 이게 가능 했을까? 답을 먼저 한다면 "아니다!"이다.
98년 11월부터 계레의 명산 금강산 관광이 시행 되었다. 죽기 전엔 가 볼 수 없다 던 곳이 누구나 다녀 올 수 있는 곳이 된 것이다.
2000년에 들어서 남북 철도, 도로연결합의 및 착공한다. 민족의 동맥을 연결시키는 사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이 대통령되면 빨갱이세상이 되니 이민 가겠다는 말이 공공연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하는 일마다 도무지 그들의 머리로는 상상이 안되는가 하면, 어떻게 뒤집어보면 영낙없는 "빨갱이 통일"을 하고 있다,  들고 떠들자니 겨레를 너머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머물고 있어서 미친놈소리 들을 것 같고, 조용히 있자니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분통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5번의 죽을 고비를 거치는 동안 한 번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민주투사 김대중의 시련은 70년 대통령선거에서 46%의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에게 패할 때부터로 기인한다.
김대중을 최대의 정적으로 여긴 박정희, 그의 권력을 향한 변신은 화려의 극치를 달린다.
그런 원조 빨갱이 사형수 박정희로부터 "빨갱이"딱지를  선사(?)받은 지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의 통일정책은 이전의 남북한 통일정책과는 전혀 색다른 접근이어서 북에서 조차도  변명과 회피를 못하도록 치밀하고 주도적으로 남북의 마음을 녹인 끝에  200년 6월 제 1차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 냈다. 북한 김정일이 서울에 오는 것 이상으로 대한민국의 국운과 목숨을 담보로 하는 회담이었다. 철학과 소신을 바탕으로 비젼을 제시하는 민족적 지도자의 모습을 한민족과 전세계에 알리는 쾌거이자,  이를 토대로 남과 북이 바다, 하늘, 땅을 연결하고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 동유럽까지 시베리아 철로를 연결하여 한반도를 주변국에서 중심국가로 발돋움 할 터전을 만들어 놓았다.

 박해와 시련, 오해와 온갖 협잡 속에서도 97년 건국 이래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정치인 김대중, 그의 당선을 놓고도 협잡질은 그칠 줄 모른다. 지역주의 대통령병 환자라느니, 지역감정에 기생하는 반쪽짜리라느니, 그래, 선거인 10.6%지원을 등에 업고 무슨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면 정신 나간 사람일 테고 , 왜? 누가? 지금도 지역감정을 건드리는가를 유추하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 되었다. 그는 자신으로 인해 그 지역이 차별과 홀대를 받았음에 책임이 있음을 통감했다. 일본이 우리에게 했던 유사한 탄압과 차별을 해방 조국에서 받아왔던 그들이지만 당선된 뒤로는 못사는 친정 돌 볼 생각 말고,  시집살이 잘하는 것으로 행복하다면 그만이었다. 소위 민주진영에서조차 지역을 볼모로 하는 소인배 정치인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엄중한 판단을 다시 한번 맡겨 보고자 한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97년말,  더 이상 우리 힘으로는 국가의 재정을 꾸려 나갈 수 없다고 대외에 국가 부도를 선포한 다음에 김대중은 15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대통령 김대중의 역할이 그에게 시대적 사명으로 주어졌다. 그토록 바래왔던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축하받을 겨를이 없었다. 비장하기까지 했던 담화내용은 음습했던 반대자들까지 국가 재활에 나서게 했고. 상장기업의 부채비율을 350%에서 150%까지 낮추고, 99년에는 유래없이 10.5%의 경제성장율을 이루면서 약속보다 3년이 빠르게 2년만에 빌렸던 돈을 상환하고 경제신탁통치를 벗어난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남녀평등, 국민기초생활자의 보호등에 전세계는 감동했고,  그해 노벨평화상 부문엔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을 비롯한 115명, 35개 단체가 몰려 사상 최대 경쟁률을 기록했으나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평화전도사 김대중을 선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였다.
그런데 노벨상 수상을 둘러싼 이상한 억측과 질시는 익히 알려진 대로 막장을 치달았다.
"난 김대중에게 노벨상 을 주지 말라는 한국인들의 로비 시도를 받았다.
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고 로비를 하려고 하면 더 엄정하게 심사한다. 
한국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 을 반대하는 편지 수천통이 전달되었다. 
내가 노벨 위원회에 들어온 이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나라에서 반대를 표시하는 편지가 날아 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노벨위원회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이 당시에 했던 말이다.

2009. 8월 그는 85년 영욕의 생을 마감한다. 용서와 화해를 실천한 조용한 거인이 가라  앉았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그의 문화와 방송언론정책 때문에 많은 개그쇼에서 웃음거리로 등장해도 국민이 행복해 했고, 21세기 IT강국의 선점은 오늘날 우리들이 온 몸으로 누리고 있기도 하다. 그가 떠난 지금에도  '이유 없이' 미워하는 지신들에게 한번쯤 '나도 혹시 그의 가해자가 아니었나, 되돌아  보는 것도 각자의 몫으로 남겨 두고 싶다.
그해 9월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시대와 국가를 변화시켜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11명중 한명으로 그를 선정 한다.
민주투사 김대중,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민족지도자 김대중, 평화전도사 김대중의 다난했던 영혼에 평화와 안식이 함께 하길 빈다.



2010.  8. 8

          사람 사는 세상  워싱턴      강 창 구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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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순님의 댓글

장금순 작성일

올려주신 글 읽을 때마다 공감하고 있습니다.

세상사는 이야기에 귀기우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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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님의 댓글의 댓글

강창구 작성일

나도 흥사단 광주아카데미에 아는동지들이 꽤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에 안부도 좀 하고 , 그러면 참 좋을 듯합니다.
나중에 방문하더라도 고향이나 동창회같은 아늑함이 없을것 같은 걱정도 되고.....,
단우님이 방문해 주시니  그나마 많은 위로가 됩니다.
한국은 요즈음 무슨 동토의 왕국같다는 느낌이 나 혼자 생각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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